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 (문단 편집) == [[제2차 세계 대전|개전]]직후 ==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 사회의 일본에 대한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진주만 공습|진주만을 기억하라! 12월 7일을 기억하라!]]"를 외쳐대고 집안에 보이는 MADE IN JAPAN은 모조리 버리거나 파괴해 버렸으며 일본에서 보내준 [[벚나무]]를 베어 버리는가 하면 [[일본계 미국인]]들은 모조리 직장에서 해고당했으며 일본계가 거주하는 집이나 상점들에 돌이 날아드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분노한 미국인들은 줄줄이 자원입대 신청서를 내고 입대하기 시작했다. [[밥 펠러|스타 운동선수들]], [[클라크 게이블|영화]][[제임스 스튜어트|배우들]], 변호사, 은행가 같은 엘리트 청년들에 [[린든 B. 존슨|현직 하원의원]]까지 죄다 눈이 뒤집혀서 군대로 달려갔을 정도다. 고위 정치가들의 아들들도 입대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존 F. 케네디]]'''가 있다. 다만 이쪽은 전후에 참전 경력이 유력할 수 있다고 생각해 계획적으로 입대한 것이긴 하다. 심지어 입대를 못 했다고 [[자살]]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캡틴 아메리카]]가 괜히 군대에 가고 싶다고 그 난리를 친 것이 아니다. 반면 독일,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같은 백인인 것도 있지만 직접 맞은 것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반감이 덜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개전 초기의 불리한 전황과 함께 더더욱 심화되어 일방적인 분노와 적대감의 표출, 이에 따른 공포감 조성으로 이어졌다. [[진주만 공습]] 당시에도 현지 일본계 주민들에 의한 테러 우려로 전투기들을 활주로 가운데에 모아 두었듯이 미국인들은 일본계들이 [[사보타주]]나 [[테러]] 활동에 나서면서 일본에 동조할 거라고 불안해했다. 일부 일본계 이민 1세대는 고국에 대한 충성심이 남아 있어서 미국과 일본이 전쟁하던 와중에 고국인 일본의 승리를 기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2세대들도 1세대들 못지 않은 만행을 저질렀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57&contents_id=66937|니하우 사건]]이다. 요약하자면 하와이에 불시착한 일본인 조종사를 지키려고 하와이에서 태어난 일본인 2세들이 조종사와 함께 원주민들과 대치해 원주민 1명이 총상을 입고 조종사를 포함한 일본인 2명이 죽었다. 조종사는 몸싸움 중에 살해됐고 조종사를 도와 준 일본인은 자살했다. 게다가 이들은 민간인인 원주민들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하거나 도주하는 과정에서 16세 소년을 납치해 인질로 삼기도 했다. 이 사건이 본토로 알려지자 이미지는 더더욱 안 좋아졌다. 특히 당시 일본계 미국인 1만 명이 일본 군인연맹에 소속되어 [[일본 육군]]에게 기부금을 보내고 있었으며 5천 명이 제국 동지회에 가입하여 미군에 대한 협조를 거부하기로 결의했고 전시 [[일본군]]에 입대한 일본계 미국인은 최소 1648명에 달했다. 미국으로서는 당연히 일본인들의 이적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합중국 대통령]]은 1942년 2월 19일 행정명령 9066호에 서명했다. 이로서 미국은 적성국민들을 강제적으로 거주지에서 내쫓아 수용소에 강제 수용시키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당시 미국의 교전국은 일본 외에도 [[나치 독일|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 [[헝가리 왕국|헝가리]]가 있었지만 주 타겟이 일본계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독일계 및 이탈리아계, 헝가리계들을 일본계와 동일하게 수용하려면 애로사항이 많았을 것이다. [[독일계 미국인]]들을 일본계처럼 수용소에 수용하려면 당시 미국 인구의 20~30% 가량이 수용소에 들어가야 했는데 태평양 전쟁의 5성 지휘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 [[허버트 후버]] '''전 [[미국 대통령]]''', 5성 지휘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장군]], 미국 최고 부자였던 [[록펠러]] 일가 등 주요 장성들과 정•재계 인사들도 줄줄이 수용소에 가야 하며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은 [[마피아]] 비율이 높아 전부 수용소에 수용하려면 마피아들과 한바탕 크게 싸워야 했을 것이다. 하필이면 당시는 마피아들이 한창 날뛰던 시절이라 마피아들을 죄다 때려잡으려면 [[내전]]을 각오해야 할 수준이었다. [[헝가리계 미국인]] 중에는 자국의 거듭되는 혼란을 피해 미국으로 온 '''[[유대인]]''' 혈통 및 [[혼혈]] 출신이 많았기 때문에 '파시즘에 동조하는 유대인을 잡아 가둔다'는 모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독일계/이탈리아계/헝가리계 미국인들은 당시 조국을 점거한 파시즘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얕거나 적었다. 독일계 미국인들과 헝가리계 미국인들의 기원은 [[1848년 혁명]]에서 출발한 '48년 세대'인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근 100년이 되어가는 독일계, 헝가리계 가문 출신들은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미국에 대한 애국심이 매우 강한 편이다. 그런데 몇몇 독일계 미국인 부모들은 자신들의 고향인 독일을 '조국'으로 생각하고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신들의 자식들을 독일군에 입대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도 나온 오리건주 출신 독일군 포로가 그 예시. 또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은 같은 지역 출신 친구나 가족 등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가장 컸지 [[남북전쟁]] 때만 해도 [[사르데냐 왕국|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 주도의 [[이탈리아 통일]]이 아직 이뤄지던 중이었기 때문에 중앙집권한 정부에 대한 충성은 매우 얕았다. 게다가 이탈리아계 미국인은 남부 출신이 많았는데 파시즘 정권의 지도자였던 [[베니토 무솔리니]]는 [[지역감정]]으로 사이가 나쁜 북부 출신이었고 집권 중 마피아의 본진인 남부 지역을 신나게 털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